Woodie's Diary

학원에서 벌어지는 작고 사소하고 놀라운 일상들에 대한 기록

SINCE 2020

2020. 10. 28

수시가 끝났습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학생이 머뭇머뭇하더니 카메라를 켭니다.
‌꼭 같이 찍은 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말이죠.
‌생각해 보니 그렇게 치열하게 고생하는 동안 사진을 하나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 미워집니다.
‌이렇게 찍어 놓으니 좋네요.
‌맘 같아서는 더 꽉 안아주고, 등 두드려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네요.
‌내년에는 꼭 시도해 볼까 합니다.


2020.9.19

면접 의자
 
저 작은 의자 위에서 모든 것이 끝납니다.
저 의자 위로 수많은 학생의 모습이 겹칩니다.
그들이 '하나'의 학생처럼 보이면 실패입니다.
그것은 입시의 실패기 이전에 교육의 실패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학생들이 용기 내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보편 속에서 안정을 느낍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공포입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본 적 없지만, 앞으론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이제는 그들이 스스로 이겨내야 할 때입니다.
제발, 제발, 힘내세요.


2020. 7. 28

레디, 액션!  

 

그들은 지금 생각보다 큰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2020. 07. 11


영화를 찍는 수업은 어쩌면 입시에서 가장 동떨어진 수업이라고 생각됩니다. ‌
입시가 다가오기 전 입시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나 보는 것입니다.
‌입시는 학생들을 과거의 행적 앞으로 불러 세웁니다.
‌입시는 현실이고, 현실은 경쟁이기에 그들은 차가운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책망합니다.
‌그들은 사실 뜨거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뜨거워지는 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학은 묻습니다.
‌너의 꿈을 위해 뜨거웠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뜨거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입시에서 달아나야 합니다.
‌스스로를 냉정히 바라보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선 먼저 나를 던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내 안에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지금의 시간이 그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시간이었길 바라봅니다.


2020. 06. 26

Mise - en - scene Film Festival 


우리는 요즘 디테일을 고민합니다.
작은 것, 사소해 보였던 시도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영화입니다.
카메라의 작은 움직임에도 감독이 아주 오랫동안 참았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올 해 최고의 수작으로 뽑힌 단편들을 보면 감독의 날 것의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꼭 미쟝센 단편 영화제는 학생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공부는 이론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고, 이론이 부수어지는 것을 목격하며 깊어집니다.
이론을 쌓고, 부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열정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곧 영화 제작이 시작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뜨거운 목소리가 담기길 기도해봅니다.


2020. 5. 15


스승의 날 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날은 길어야 10개월 짧으면 6개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날은 2개월 되었습니다. 
'스승'은 너무  거창한 수식입니다. 

저는 '친구'가 좋습니다. 
우리는 결국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들보다 아주 조금 더 먼저 걸었고 
조금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요. 

길어야 오년, 그정도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은 비슷할 것입니다. 
그다음 부터는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같이 돕고, 위로하고, 애쓰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친구처럼 지낼 날을 기대합니다. 

2020. 5. 15

집으로 오니 작년에 함께한 수연이가 보내준
산딸기 잼과 편지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로하는 마음이 가득한 글을 썼던 친구입니다.
학교에 가서 쓴 시나리오도 여전히 그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입시가 아니라 예술을 했었구나, 안도했습니다.

혹여나 저의 경솔한 뒷걸음질이
누군가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노심초사했는데,
그때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이렇게 전해주어 고맙습니다.


 

2020. 04. 25


가르치는 일을 얼마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가르침보다 배움의 양이 훨씬 더 많다고 느낍니다.
지식을 나누는 것보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한 일임을
학생이 알려주었습니다.

매 수업 시간 마다, 새로운 신세계를 보았다는 듯
눈 빛이 깊어지던 이 아이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2월 24일
                                                                                                                                                           공간의 의미

'입시 지옥'
에서 만난 인연이 달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불안함이 익숙해지고 경쟁이 삶의 방식이 되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지 모릅니다.
한 해의 입시가 끝나고, 새롭게 얻은 학원에 혼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작년 과외로 만났던 민영이와 혜빈이가 찾아왔습니다.

같은 학교에 입학한 그들이 서로 윗 집 아랫 집에 자취방을 얻었고,
주변에서 BBQ가 그나마 가장 먹을 만한 곳이라는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작년 입시 기간의 일들도 풀어놓았습니다.

방금 전까지 이곳을 전장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들이 척박한 공간에 이야기를 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작년 한 해 동안 이야기를 만들었구나.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그들이, 잠시 후 돌아와 파란색 안개꽃을 전해주고 갔습니다.
학원의 곳곳에 안개꽃이 피었습니다. 

2018년의 이야기

2018. 08. 03

수시를 대비하며


군대에서 제대하기 전 무료 온라인 입시 과외를 시작으로 학생들과 수업을 한 지 4개월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부터 시작했던 우리가 어느새 각자의 단편영화를 한 편 씩 만들어 냈습니다.
우여곡절도 당연히 많았습니다.어떤 학생은 카메라를 빌리기 위해 더운 여름날 부산 시내를 누비고, 어떤 학생은 출연자를 섭외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밥을 사야만 하는 일들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영화를 찍는다는 게 무엇인지 처음 경험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모든 학생들이 자신만의 고난과 역경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찍었든 카메라를 빌려서 찍었든 영화를 찍어본 학생들은 이전과 분명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화가 고생이라는 것을 알지만 왜 계속해야만 하는 지도 각자가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런 학생들을 보니 얼마 전 카페에서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지금 이 선택이 옳은 걸까?' 이런 질문들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글배우님이 쓴 <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 라는 책이었습니다.

"못 그리는 그림도 계속 보다 보면
어느새 처음보다 훨씬 나아져 있을 거야.

가진 게 없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네가 가진 꿈이
너무나 멋있다"


학생들과 처음 이야기할 때만 해도 각각의 학생들이 모두 똑같아 보였습니다. 영화는 하고 싶은데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고, 좋아하는 것도 모르겠고, 영화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을 볼 때면 내심 기대가 됩니다. 저 친구들은 미래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스스로 선택한 그들의 색은 어떤 그림을 그릴까.

영화 만들기를 끝으로 입시 준비의 '중간'은 왔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공부하며 깊이를 더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처음 본인의 약점과 강점, 자신의 색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학습 계획표를 만들어 오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각보다 더 많이 두려워한다는 것에 저 또한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과제 해온 것을 보니 마음이 한 결 놓이더군요. 모두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았고 '하고 싶은 공부' 목록을 스스로 적어왔습니다.

저도 같이 학생들과 공부하며 우리의 깊이를 더해가려 합니다.
(물론 입시 준비도 철저히 하고 있고,
입시 준비와 스스로 영화에 대해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